한강, 실학문화의 허브를 찾아서, 학술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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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실학문화의 허브를 찾아서, 학술세미나
  • 의왕방송
  • 승인 2022.06.3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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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7월 2일 오후 2시 실학박물관(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6) 열수홀에서 '한강, 실학문화의 허브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학술회의를 연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경기실학연구센터와 위례역사문화연구소, 윤리문화학회,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이 주관한다.

조선 후기에 등장한 실학은 주로 경기도 지역을 공간 배경으로 삼은 새로운 움직임이었다. 과거 한강은 소통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경기도는 21세기에 진입한 지금, 실학의 면모와 정체성를 살펴보기 위해 이번 학술회의를 기획했다.

제1주제 발표는 '21세기 경기실학의 새로운 모색'으로 대동법으로 유명한 가평 출신 김육을 재조명하면서 경기실학의 21세기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다.

(발표:강 진 갑(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토론 :이 상 호(경상국립대)

 

제2주제 발표는 '한강일대 실학유산의 실태와 활용방안'로 실학문화 유산들을 살펴보고 활용방안을 모색해본다.

(발표:김 기 영(윤리문화학회)(토론:이 용 을(윤리문화학회)

 

제3주제 발표 '조선 후기의 여성실학자들'에서는 실학의 입장에서 조선시대 여성 지식인들을 조명·발굴하고 그 행보와 활약을 살핀다.

(발표:홍 찬 선(시인)(토론 이 연 희(윤리문화학회)

 

마지막

제4주제 '강위(姜瑋), 실학에서 개화사상으로'에서는 광주 출신 강위를 통해 실학사상과 개화사상의 연결고리가 다뤄질 예정이다.(발표:김 명 섭(단국대)(토론: 김 병 기(광복회학술원장)

 

아래는 정성희 실학박물관장의 환영사 전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실학박물관장 정성희입니다. 귀한 주말의 시간을 할애하여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와 환영의 인사를 전합니다.

실학박물관은 아시다시피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고향이자, 한강의 본류인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두 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지역은 조선시대 경기 양근군 서종면에 속해 있었는데,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풍부한 수량과 충적토지가 형성되어 선사시대부터 비옥한 토지를 중심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입니다.

조선이 건국한 이후 서종면 북한강가에는 용진(龍津)나루가 있었습니다. 수종사 절 입구에서 북한강을 건너는 지점에 위치해 있었던 이 나루는 서울에서 양주를 거쳐 경기도 양평으로 이동하는 길목이었습니다. 수량이 많을 경우 배를 이용하여 강을 건넜지만 갈수기에는 걸어서 강을 건널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때문인지, 임진왜란 때 소서행장(小西行長) 군이 이 길을 통해 서울로 입성하기도 하였습니다.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에 따르면, 선조가 1595년 용진에 경기 좌영을 두고 양평의 파사성을 중심으로 방어막을 형성하여 왜의 북진에 대처했다고 합니다. 두물머리 일대가 군사전략상 요충지였음을 알려줍니다.

또한 두물머리 건너편 남종면에는 조정에 올리는 그릇을 만들던 조선시대 사옹원에 소속된 번조소가 있었습니다. 특히 양구에서 출토되는 백토(白土)를 북한강 줄기를 따라 운송하여 남한강과 만나는 지점의 번조소에서 조선백자를 구워냈습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그릇들은 왕실로 납품되어 사대부들의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문인화가인 겸재 정선과 정수영은 노론의 구심점이었던 석실서원을 비롯하여 두물머리 일대를 비롯한 한강의 경관을 그렸습니다. 그 이유는 두물머리가 조선후기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한강변에는 신익성의 창연정(蒼然亭), 김수증의 일사정(一絲亭), 나주 정씨가의 채화정과 품석정 등 시인묵객들이 한강의 풍류를 즐기던 정자들이 많아 다양한 시문들이 남아있습니다. 19세기에는 다산 정약용을 비롯하여 김매순, 석천 신작 등 대사상가들이 모여 살면서 수로를 따라 왕래하며 학문을 토론하던 곳이었습니다.

이처럼 두물머리는 실학의 집대성자인 정약용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고,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들러 학문을 논하기도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개항 이후에는 이항로의 화서학파를 중심으로 의병운동이 일어났을 때 춘천에 기반을 둔 유인석 등의 의병군들과 수로 교통을 이용하여 정보를 교환하며 난국을 극복하고자 노력하기도 했던 곳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인적 자원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었던 것은 두물머리가 가지고 있는 공간적 특성이자 지리적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앞으로 두물머리는 과거의 문화 공간으로서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 문화사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것이라 믿습니다.

이러한 차제에 오늘과 같은 행사가 열리게 된 것은 소중한 의미를 부여할만한 일이라고 짐작하여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학술회의에 귀중한 발표와 토론을 맡아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드리오며, 아울러 대회를 주관하신 경기실학연구센터, 협동조합 위례역사문화연구소, 윤리문화학회, 사단법인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에도 두루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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